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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권단 2021. 6. 13. 15:31

책 표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2016/창비]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단지 '페미니스트', 이 단어가 내게 조금은 익숙한 단어였기 때문이었다. 

 처음 이 단어의 뜻을 찾았을 때나 주변인에 들었을 때, 대부분이 '모든 성별이 평등함을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답변을 해주었다. 어렸던 나는 그런 단어에 호기심을 가졌고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차별과 대우, 시선 등에 여러 의구심을 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에 페미니즘을 검색하면 '여성우월주의'라는 뜻으로 쓰인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내가 여태껏 알고 있던 페미니즘의 뜻과 현재 알게 된 페미니즘의 뜻 중 과연 어떤 뜻이 본래의 의미인지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국어 시간에 읽을 책을 찾다가 홀린 듯 이 책을 발견하였다. 이 책은 왠지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선택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우리 사회는 현재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피해 망상이라고들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 책에는 작가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이하 아디치에)가 실제로 살면서 겪어온 그리고 나도, 우리도 겪으며 살고 있는 사례들이 있다.
 첫 번째로 남자이기에 권력을 쥔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왕은 남자였다. 여성이 왕이 된 경우가 있기는 했을 테지만 그럴 때 우리는 여왕이라고 굳이 앞에 '女'를 붙였다. 권력에는 성별이 중요하지 않은데 왜 그랬던 것일까. 현재도 대부분의 회사에서 회장, 사장 등의 간부직은 남성이다. 물론 여성이 간부직인 경우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새 발의 피에 불가하다. 

 본문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아디치에가 초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학급 전체가 시험을 쳐서 최고점을 받은 사람이 반장으로 임명될 것이라 하였다. 아디치에는 그 자리를 간절히 바랐고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아디치에는 반장이 되지 못했다. 이유는 아디치에가 여성이었고, 반장은 남성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현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어야 하긴 하다. 하지만 옛날에는 이것이 당연하다는 듯 사회의 불문율로 자리 잡혀있었다. 좀 더 넓게 본다면 아직도 그렇게 자리 잡혀있기는 하다. 난 이것이 변화되었으면 좋겠다.
 두 번째로는 모든 가치관의 시작인 가정의 문화와 주변인들의 시선, 그리고 교육이다. 

 여자아이는 야망을 가지되 너무 큰 야망을 가지진 마라. 남자아이의 기가 죽을 테니까. 여자아이는 언제나 다소곳이 앉아야 한다. 예쁘게 꾸며야 하고 화를 내서는 안된다. 그래야지 좋은 인상을 주어 좋은 남자에게 시집을 갈 테니까. 남자아이는 언제나 씩씩하고 강해야 한다. 언제나 우위에 있어야 한다. 남자아이는 울면 안 된다. 돈은 남자가 내는 거다. 등등등.... 생각나는 대로 적어봐도 이 정도이다. 우리는 이런 소리들을 귓구멍 닳도록 듣고 살았다. 대체 왜 그런 것일까. 태곳적부터 바뀌지 않는 여성성과 남성성. 그것을 뜯어고치고 싶다. 여자답게, 남자답게, 이런 말이 없었으면 좋겠다. 결국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꿈을 억눌러야 하고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 제 목소리를 내지도 못한 채 자신의 능력을 썩히며 육아와 살림에만 집중해야 한다. 오로지 결혼만 잘하면 쟤는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것이 결코 옳은 세상일까? 이런 세상에 대해 사람들은 지금도 많이 바뀐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바뀌었다면 21세기를 사는 나는 어째서 이런 소리들이 익숙하게 들려오는 것일까?
 세 번째로는 삶의 차등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보다 더 많은 시간 일을 하여도 더 높은 성과를 내어도 심지어 더 높은 직급에 있어도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여성들이 다수 있다. 단지 우리가 여성이기 때문에 말이다. 우리는 밝은 대낮에 길을 거닐 때도 혹시 모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사회적 틀에 맞추기 위해 몇 시간에 걸쳐 치장을 하고 살랑거리고 아름다우며 걸리적거리고 불편한 옷을 입어야 하고 제 발뒤꿈치를 양분 삼아 뾰족한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 남학생의 교복 와이셔츠에선 보이지 않는 불편한 라인이 들어간 와이셔츠를 여학생들은 입어야 하며 실용성 없이 작고 귀여운 틴트 주머니를 단 교복을 입어야 한다. 여고등학생의 와이셔츠가 아동복의 크기와 같으며 여성복 판매점에서는 옷의 크기를 점점 반으로 줄여가며 가격은 두 배로 늘려간다. 단지 우리가 여성이기 때문에 말이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나는 모두에게 묻고 싶다.

「페미니스트 : 모든 성별이 사회적·정치적·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나는 이 짧은 한 줄을 중학생 1학년 때, 1학년 건물 화장실 칸 안에 붙어있던 포스트잇에서 발견했다. 우연인지 고의인지 나는 매번 화장실을 갈 때마다 이 칸에 들어갔고 내가 알고 있던 뜻과 맞는 답변을 너무나도 오랜만에 들었기에 계속 보고 싶었다. 하지만 2학년이 된 후, 이것을 보러 갈 순 없었지만 이 책을 읽던 도중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학교는, 도서관은, 책은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나를 연결해 주었다. 이 사회에 부당함을 느끼고 있는 나를 누군가는 이상하게 쳐다볼 지 모르지만 난 이런 포스트잇과 같이 짧은 인연이 있다면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의 시선이 두렵지만 누군가가 남긴 포스트잇 하나가 나의 확성기가 될 것이고 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모든 여성들이 그저 사람으로서 살게 될 세상이 오게 만들 때까지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오수영(옥천여중2)